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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노래모음 사망이유

김현식 노래모음입니다

 

김현식 1집부를땐  1980년대 극초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상,

 

말년에 보기 힘든 가성 영역을 들을 수 있다.

 

1978년 본래 이장희의 주선으로 1집 앨범을 내려 했으나

 

이장희가 미국으로 떠나고 김현식 본인도 대마초 문제로

 

1집 앨범을 녹음만 해둔 채로 놔둬야 했다

 

 

결국 1980년

 

자신의 이름을 건 데뷔 앨범을 내지만 여러 사정으로 방송에서는

 

매장되면서 이를 비관한 김현식은 술과 담배에 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1984년 발매한 2집인 <사랑했어요>가 대박을 거두면서

 

가수로 자리잡는데 성공했고, 마지막까지 같이 한 동아기획

 

레코드와 계약한다.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제작한 3집

 

<비처럼 음악처럼>도 30만장이 넘게 팔렸으며 상업적 성공과

 

호평을 받았건만 그 자신은 술과 담배 그리고 1987년 전인권,

 

 

 

 

故 허성욱등 과 함께 다시 대마초를 피다가 구속되며

 

피폐해져갔다.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정에

 

여리고 말은 거칠어도 꽤나 섬세했었다고...

 

 친한 후배인 유재하가 1987년 11월 1일 교통사고로 죽을 때도

 

대성 통곡하면서 한동안 술에 매달리며 슬퍼했었다

.

 

 

 

오죽하면 4집을 낼 당시 친구이던 이문세나 함춘호 같은 지인들은

 

"아프면 약을 먹어야지 왜 술을 먹냐?" 걱정했음에도 그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술을 들이켜 댔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그의 몸은

 

점차 피폐해져 갔다. 1989년 영화앨범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녹음할 때부터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 5집 앨범을 발표할 당시 의사가 '술을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죽는다'고 경고할 정도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

마지막 6집 앨범을 낼 때에는 그를 이전부터 아끼던 동아

 

기획의 김영 사장을 만나서 "언젠가 술 먹다가 죽고자 했는데..."

 

라는 식의 말을 할 정도였고 후에는 간경변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입원한 동부이촌동 병원에서도 자주 탈출을 하여 술을 마셨으며

 

 자기몸을 거의 내 팽개치다시피 하였다.


그래도 그에겐 언제나 기타가 들려 있었고 병실에서도 항상

 

노래소리가 끊임이 없었다.


사후 유작인 '내사랑 내곁에' 외 실질적 유작인 '넋두리'앨범이

 

 바로 이때 병원에서 외출을 다녀오다시피 해서 간신히

 

만들어진 것이다. 김영 사장의 포기하자는 말에도 각혈을

 

하면서까지 엄청난 유작을 남기고 우리곁을 떠나갔다.

 

김현식의 음악 장르가 다양한데, 그중 <사랑했어요>을

 

트로트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으나 한국적 크로스오버

 

 발라드라고 하는게 오히려 적합하다. 멜로디 라인이나

 

악기 구성등 전반적 곡의 흐름이 우리가 아는 트로트와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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