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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처음으로 외국가수를 올리는데 전설적인 외국가수가

많지만 많은 업적에 비해 홀대받은 가수를 올립니다.

 


팝의 황제 (King Of Pop)

마이클 잭슨을 천재였고 누구보다도 노력했지만 그 시대가

음악성에는 빛을 보고 인물(흑인)로서는 그를 끌어내기위해

모든 미디어 매체는 안간힘을 썼던 시대에 태어났다.

 

 

 

흑인으로써의 인종차별을 많이 받아본 그는 백인이 되어가는

자기의 모습만 백인이지만 위선의 시선은 백인이 될수 없었다 .

시대가 변함으로서 그를 팝의 황제라 부르고 그의 업적을 높이

산건 그만큼 시간이 걸렸다. 그의 죽음뒤에서 뒤늦게 ..

 


인종간의 음악 장벽을 부수어 없앤 동시에 듣는 음악의 시대에서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열어젖힌 대중음악의 신화적인 인물

팝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가수이자 전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 가수로

천재가 노력까지 하면 이렇게 된다는걸 보여준 위인.

이같은 명성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이클 잭슨은 1963년 우리나라 나이로 6세쯤부터 아버지의 고된

교육을 견뎌내며 가수 생활을 시작해 70년대 잭슨 파이브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이 밴드에서 팝의 황제(King Of Pop)로 등극했다.

 

 

1991년 발매한 'Dangerous' 앨범의 성공과 슈퍼볼에서 새로운

퍼포먼스 개념을 정립하며 80년대 못지 않게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팝의 황제로서 명성을 더 높였지만 1993년 거짓 아동 성추행

혐의로부터 비롯된 불면증과 스트레스 그리고 진통제 중독은

마이클 잭슨의 삶을 힘들게 했다. 그리고 2009년 잭슨의 주치의

콘래드 머레이의 무분별한 프로포폴 사용으로 5월달부터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 과실치사로 사망했다.

 

 

머레이는 체포됐고 2급 살인죄로 감옥에 수감됐다.

마이클 잭슨은 90년대 중후반부터는 언론에게 완전히 먹잇감이

돼 버렸고 실제로 마이클 잭슨을 미친 사람(Wacko Jacko)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었다. 퀸시 존스는 2001년 자신의 자서전에서

비평가들이 마이클을 음악사에서 지우려는 것 같다며 걱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름이 잊혀지지 않고 여전히

세계 곳곳에 기억될 수 있는 것은 그가 남긴 음악과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는 일개 80년대와 90년대의 오락거리가 아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대에게 전승되는 문화의 정수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빌보드 1위

Ben (1972)
Don't Stop 'til You Get Enough (1979)
Rock with You (1980)

 


Billie Jean (1983)

 

 

Beat It (1983)

 


Say Say Say (Duet with Paul McCartney) (1983)
I Just Can't Stop Loving You (Duet with Siedah Garrett) (1987)

 

 


Bad (1987) :30년이 지났지만 퍼포먼스 쩝니다

 

 

 

The Way You Make Me Feel (1987)
Man in the Mirror (1988)
Dirty Diana (1988)
Black or White (1991)
You Are Not Alone (1995)

 

빌보드1외


Michael Jackson - Smooth Criminal - Live Wembley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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